교회
앞에 작은 정원이 있고 백일홍 꽃과 아주까리 화초와 장미꽃들이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정원
에 아침마다 참새들이 몰려와서 열심히 모이활동을 합니다. 대충
세어봐도 삼십마리는 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가족인듯 싶습니다.
꽃은
이미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들어서 색깔도 흐려지고 어떤 꽃은 이미
내년을 위해 스스로 꽃씨를 품은채 색이 바랜채 고개를 숙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새들에게는 이런 씨
앗 봉오리가 먹이가 되는지 그 주변에 가득 모여 열심히 떨어진 꽃씨들을 주워 먹습니다.
그동안에는
들비
둘기처럼 체구가 큰 새들이 몰려오곤 했는데 올해 가을에는 체구가 작은 참새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교회
앞 뜰이 크지는 않지만 꽃과 잎이 가득한 화초들 탓에 새들이 찾아오기 좋은 정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꽃밭은
교회에 오는 교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심어둔 것인데 쓰기는 새들이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아침
새들이 이슬처럼 그곳에 내려 열심히 식사를 하고 가는 곳이 되었으니 정원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주인은 새들인 것 같습니다.
꽃들은
교인들을 반겨주고 새들에게 먹이도 내어주니 두 몫을 톡톡히 하고 있
는 것입니다. 또
교회입구에는 좌우에 몇개의 화초화분들이 서 있습니다. 일명
문지기 화분입니다.
출입문
좌우편에 있기에 문지기하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수년전
교인들이 선물해 준 것으로 정성스레 물을 빠짐없
이 꼬박꼬박 주었더니 싱싱하게 수년째 잘 살고 있으니 오시는 이들을 환영하는 일에 아주
제격입니다.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처럼 뜰에 꽃이나 화초를 기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려견
반려묘가 있
듯이 반려초나 반려목이란 말이 생길 것 같습니다. 펫을
기르는 일은 이제 대중화된 일상이 되었습니다. 스
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작은 생명을 돌보는 일은 잠시 생각을 쉬고 마음을 회복하는데 도움
이 되지요.
생명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는 동안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화초는
그
중에서 생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쇠퇴를 빠르게 보여줍니다. 씨에서
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가
사그라져 씨를 남겨 새봄을 기약하고 금새 사라집니다.
생명의
순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지
요. 한해살이
식물은 우리 자신의 생명도 같은 순리에 있음을 조용히 느끼게 해주니다. 그래서
화초에 날마
다 물을 주며 대화하는 이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
때로 시작
하여 청년의 때를 지나 중년과 노년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과 정원에 한해살이 꽃들 사이에는 다만 시간
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벌써
가을의 맛이 물씬 풍기며 마음까지 겸손하게 합니다. 그렇게
화사하던 꽃과 잎들이 하나씩 색이 바래가고 단단한 씨앗 봉오리로 바뀌어가는 것이 무대를 내려와서는 다
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의상을 갈아입는
배우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들어오며 가을이
성큼 눈앞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여름에
화려한 색만큼 가을의 따스한 색 또한 아름다운 것이니 이번 가을
에도 우리의 믿음의 색도 더 따스하고 짙어지기를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