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12 08:11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100년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5  

충청도 청주가 고향인 신규식선생은 대한제국 군대장교였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삼키려고 군대를 먼저 해산했다. 그는 분했지만 힘이 없었으며 어쩔도리가 없었다. 곧이어 한일합방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태극기는 내려지고 그 자리에 일장기가 내걸렸다. 이에 신선생은 전재산을 팔아 중국상해로 건너갔다. 그리고 청일전쟁으로 무너진 중국을 되살려보려는 중국지식인들과 합류했다. 중국의 독립을 꿈꾸는 쑨원선생을 도왔다. 무능하여 무너진 청왕조의 복원이 아니라 중국백성이 주인되는 중화민국설립을 위해 애쓰는 중국지식인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일제와 맞서 그들의 민주공화정 국가설립을 열심히 도왔다. 당연히 중화민국설립을 주도하고있던 중국지도자들은 신규식선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시절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은 상해로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신규식선생이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세우겠다는 모임이 존재했고 당시의 상하이는 중국의 땅이었지만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등 서구열강이 각자의 치외법권적 자치구역를 가진 독특한 보호구역이었다. 자연스럽게 유럽의 외교관들이 넘쳤고 유럽의 은행들이 가득했으며 독립군들의 자금을 공급받는데 매우 효과적인 지금의 홍콩같은 경제특구였다. 거기에서 신규식선생은 독립의 꿈을 품고 상해로 넘어온 지식인들의 후견인이요 보호자의 역할을 독독히 했다. 신선생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계사가 왕이 다스리는 왕조의 시대가 끝나가고 백성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 대표를 선발하여 권력을 맡겨 다스리는 공화정의 시대가 열린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의 시대흐름은 곧 중국와 조선에도 밀어닥칠 것을 예견한 것이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듣고 알았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신규식선생이 설립한 독립운동단체인 동지사에 모두 모여들었다. 동지사는 얼마후 상해 임시정부의 모판이 되었고 그 안에 군대양성을 하는 무관학교까지 설립되었다.

왕과 귀족이 아닌 백성과 대표가 다스리는 나라인 민주공화국가가 그렇게 우리 한국역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후 10년동안 신규식선생이 상해에 가서 준비한 대한민국의 그림은 삼일운동이 나기 일년전인 1918 년 "선언" 이란 앞으로 세울 대한민국의 헌법초안에 대표들이 서명을 하게 되었고 그 정신이 그대로 기미독립선언문에 실리게 되었으며 1919년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5년후 1945년 우리나라는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제헌국회를 선출하면서 5천년역사에 처음으로 제국이 아닌 민국이 등장한 것이다. 올해 삼일운동 백주년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사용한 첫 정부인 상해임시정부가 출범한지 백년이 되었다. 100년전 나라도 빼앗기고 노예처럼 살아야 했으며 먹을 식량도 없고 문화나 기술이나 건축물 하나 변변히 없는 형편없어 보이던 민족이 이제는 세계에서 10번째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것도 분단된 나라인데도 말이다. 지금 3만불이 넘는 소득을 가진 나라는 세계에서 7개 나라뿐인데 나머지 나라들은 과거의 제국주의열강이었고 우리만 순전히 식민지였던 나라중에서 경제대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다. 백성의 힘이 이렇게 무섭도록 발휘된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것도 6.25 라는 동족간의 전쟁까지 치루고 전국토가 완전히 폐허가 된데서 경제제국이 된 것도 우리나라뿐이다.

불과 백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역사속에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은 다 겪었다. 식민통치, 전쟁, 혁명 등 잠시도 숨돌릴 틈없이 달려왔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세계화까지 도달했다. 꼭 백년전 나라를 잃고 군대를 강제로 해산당해 무기력하게 상해로 도망치던 신규식 선생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감격의 눈물을 쏟고 말것이다. 내조국이 이렇게 대단하게 성장했을 줄이야 하고 말이다. 당시 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오직 희망하나로 살았지만 그들의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 그동안 외면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수고와 그들의 후손을 대한민국이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라가 입에 풀칠을 하느라 이웃나라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느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초석이 되준 이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 올해부터 정부가 해외거주와 국내거주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는 무조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시켜주기 시작했다. 일송정 푸른솔을 부르며 고국을 등지고 광야로 떠나면서 선구자의 노래를 부르던 독립투사들에게 이제야 우리가 감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걸보니 나라가 앞으로 더 잘되려나보다. 지나온 백년의 세월은 우리민족에게는 고단했다. 나라가 서야했고 백성이 살아야 했기에 갈라지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축복받은 땅이 되었으니 이제는 다 덮어주고 알아주고 독립을 완성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마지막 남은 독립의 꿈인데 전쟁없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의로운 민주공화국가의 모습으로 완성될 것을 믿는다. 선구자들은 꿈을 꾸었고 그 자녀들은 하나님께 간구했으며 그 자손들은 열매를 얻었다. 그저 꿈만 꾼것이 아니고 기도만 한 것이 아니고 열매만 받은게 아니다. 그 모든 수고에 피와 땀을 더했으며 간절히 얻은 것들이다. 이제는 꿈도 기도도 열매도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았으니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애국하지 않는 것이다. 예레미아처럼 엘리야처럼 우상의 시대에 구별된 칠천의 선지자들을 찾으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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